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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형 2005-12-19 03:17:02 | 조회수 : 4,328
   일본건축답사(교토,나라) - 3

3일차 (9월12일)


우리는 도쿄[東京]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교토[京都]로 향했다.
도쿄에서는 기차로 2시간3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였다.기차에서 내려 교토의 첫 건축물 교토역을 볼 수 있었다.
교토역의 내부는복합공간이 강하게 느껴져 교토역 이라는 이름으로만 부르기에는아주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교토역의 복합문화공간의 중심은 에스컬레이터와 계단이 였다. 이 중앙 존에서 길다란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여 동쪽과 서쪽 존(Zone)의 11층까지 단 한 번에올라갈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단순한 계단도 기가 질릴 정도로 반복되니 수직 상승미가 돋보였고, 눈을 시원하게 트여주는 거대한 구조물 같았다.
무려 11층까지 에스컬레이터 한번으로 올라간다는 발상은 고층의 상당한 공간을 포기함으로써 얻어진다.
이 많은 공간을 포기하게 만든 것은 천년 고도라는 교토의 역사적 무게 떄문일 것이다.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린 듯한 에스컬레이터 정상은 공중정원과 역의 동쪽 끝은 허공 위에 떠 있는 철제 다리인 스카이웨어가계속 이어진다. 스카이웨어는 SF영화 우주선의 통로를 닮은 이 스카이웨어는 각 층의 미술관과 오락시설로도 이어졌다. 에스컬레이터 옆의 계단은 사람들에게 오르내리는 공간보다 앉아서 쉬는 휴식공간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계단 대신 날개 같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하늘정원으로 올라갔다. 도착한 정상에는 교토의 전망이 확 트이는 하늘정원이 있었다. 중앙홀은 기차를 이용하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지만,이 하늘정원은 거짓말같이 고요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얄밉게 잘 지어졌다는 감탄과 함께 금각사로 향했다.

 

   

                  (교토역)                                      (교토역 외부의 계단)                             (교토역의 모습)

 

천년 고도의 흔적이 남아 있는 교토의 거리는 깔끔하고 조용함 속에 가장 일본다운 모습으로 기억된 곳 이였다.
차 밖으로 보이는 교토의모습을 보고 느끼는 사이 한국 음식점에 도착했다. 점심으로 우리는 비빔밥을 먹었다.
나물과 고추장에 밥을 비벼 먹은 비빔밥은 조금은 지쳐있던 우리에게 만족감과 힘을 주었다. 든든히 배를 채운 우리는 금각사로 향했다. 교토는 제 2차 세계대전 중에도 그 문화적 가치로 인해 폭격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고 할 만큼 유서 깊은 교토에는 2개의 옛 궁성을 비롯해 2,000개가 넘는 절과 400개에 달하는 신사, 수십개의정원 및 궁궐 등이 있다. 그 중에서 금각사는 청수사와 함께 교토의  2대 관광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금각사`는 금각 3층 건물중 2,3 층이 금박으로 덮여있어 더 많이 알려져 있는데 원래 이름은 로쿠온지 이다.

1950년에 화재로 소실되어 그 후 다시 지어졌으며. 지금의 금각사는 에도 시대에 복원되어 히가시야마 문화를 전하고 있다. 우리는 찬란한 금빛이 아주 눈부신 금각사를 보고. 탄성을 질렸다.
물과 산 그리고 나무가 함께 있는 자연속에 금각사는 마치 허공에 떠있는 느낌마저 들게했다. 또 한편으로는 금이 가지고 있는 느낌과 색이 주변 자연경관과 대조적으로 비추기도 했다. 금각사의 멋진 모습을 배경으로 우리팀은 사진을 한 컷 찍었다. 울창한 나무 숲을 새소리가 들리는 길을 거닐며 잠깐이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숲의 향을 느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호수에 비치는 금각사의 모습과 그 주위에는 있는 산, 나무들 이었다. 호수에 비치는 모습이 한편의 동양화를 보는 듯 했다. 이젠 아쉬움을 접고 금각사를 뒤로 한 채 다른 목적지로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금각사의 입구)                                (금각사의 전경)                              (금각사의 전경)

 

헤이안 신궁 정문 오우덴몬은 2층 누각의 형태로 멀리서도 눈에 확 띄는 강렬한 붉은색이였다.
794년 일본의 간무왕(桓武王)은 수도를 나라에서 교토로 옮기면서 평화스러운 세상이 오길바라면서 수도의 이름을 "헤이안쿄(平安京)"라고 지었다. 헤이안신궁은 간무왕의 헤이안천도 1,100년을 기념하며 간무왕을 제신으로 1895년에 세운 신궁이다. 후에 헤이안시대의 마지막 왕인 고메이왕(孝明王)도 함께 모시는 되는데 헤이안천도의 처음왕과 마지막왕이 같이 있는 셈이다. 정문 옆에는 신사에 봉납하는 술통이 있고, 손을 씻는 물이 여기에도 어김없이 있었다.

헤이안 신궁 대극전은 옛날 국왕이 정무를 살피고, 신하들의 인사를 받거나 즉위식을 행하던 곳이라 하는데 대극전 건물 좌우로 동쪽의 소우류로(蒼龍樓)와 서쪽의 핫코로(白虎樓)를 같이 세워 전체적으로 보면 꽤나 화려한 느낌이 들었다.
대극전 지붕, 지붕끝의치미가 금으로 덧씌워져 그 느낌을 더했다. 헤이안신궁 핫코로 여러 개의 지붕을 세웠는데 독특한 느낌을 받았다. 신궁의 신원에는 넓은 회유식 정원이 조성되어 있어서, 전형적인 일본식 정원을 볼수 있었다.
헤이안 신궁의 전체적 느낌은 붉은색의 기둥과 푸른기와 그리고 소나무 였다. 그리고 지붕끝의 치미와 난간에 금박으로 덧씌워 화려함을 자랑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헤이안 신궁을 둘러보고 교토에 2대 관광지로 손꼽히는 청수사로 발길을 돌렸다. 오후 2시를 넘어선 일본의 날씨는 너무도 더웠다.

 

   

                (오우덴몬)                                           (대극전)                                            (핫코르)

버스에서 내려자 오르막 길만이 보였다. 청수사는 오토산중턱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였다.
청수사로 가는 길양쪽으로는 기념품을 파는 상점들이 하나의 새로운 거리를 만들고 있었다.
청수사의 입구에 이르자 보이는 목조건축물은 헤이안 신궁에서 처럼 붉은 색상을 띄고 있었서 헤이안 신궁과의 다른점을 느끼게 하지 못 했다. 청수사 안으로 들어가기 전 손을 씻고, 발걸음을 제촉하는 우리에게 향내음이 코 끝을 스쳐감을 느낄 수 있었다. 청수사에 이르자 교토 시가지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주변의 경관과 어울려 느껴지는 교토의 모습은 너무도 멋있었다. 청수사의 본당을 떠 받치고 있는 139개의기둥들은 20~30년 마다 교체 한다고 한다. 높이가 무려15미터 라고 하니 그 웅장함을 알것같았다. 청수사는 790년 나라에서 온 승려 예찬이 처음 세운 절로 처음에는 기타칸논지로 불리다가 곧 청수사로 이름을 바꾸었고 현재의 건물들은 1633년 제3대 쇼군 이였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원조를 받아 재건되었다고 한다.
청수사에서 가장 유명한 장수 건강 학문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다는 물줄기에 물을 마시면 소원을 들어준다고 해서 한 모금 마셨다. 부처의 발바닥이 라고 하는 돌은 만지면 복이 온다고 해서 인지 맨들맨들 했다. 또 사랑이 이루어지는 바위도 있었다. 우리는 다음 장소인 동대사로 향했다.


   

               (청수사 입구)                                      (청수사)                                (청수사를 떠 받치는 기둥)

 

동대사에 들어서자 사슴을 제일 먼저 볼 수 있었다. 동대사 입구 사슴공원에는 사슴을 풀어놓아 사람들과 같이 어울릴 수 있도록 해놓았다. 사슴에게 줄 과자를 들고 동대사로 들어가서 과자를 주자 사슴들이 계속 뒤를 따라 오는 모습이 너무 재미 있었다. 사슴과 함께 사진을 찍고 동대사 안으로 들어갔다.
동대사는 일본 최대의 목조건물이다. `나라의 대불`로 널리 알려진 이 절은 와카쿠사야마 산록에 광대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으며, 대불전을 비롯하여 많은 국보급 건축물과 고불상을 수장하고 일본 불굥 문화를 대표하는 대사원이다.
동대사의 거대함과 웅장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또 하나에 재미있는 사실은 동대사를 삼국인이 만들었다는 것이였다. 신라 의상대사의 제자였던 심상대덕은 백제 양변스님의 초청으로 화엄불교를 강설하게 되고 이에 성무천황은  747년부터 동대사를 짓기 시작한는데 당시 동대사 가람의 총책임자는 고구려인 고려복신이 맡았으며 대불의 주조는 백제인 국중마려가 그리고 대불전 건축은 신라인 저명부백세가 만든 것이다.
한마디로 동대사(東大寺)는 고대한국 삼국인이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실을 알고 일본건축 속에 한국의 영향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슴과 즐거웠던 동대사에서 시간도 저물어가는 해와 함께 끝났고, 숙소가 있는 오사카로 향했다. 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그 동안의 일정에 조금은 지쳐버린 몸을 침대에 누운체 누가 먼저라고 할것도 없이 잠들었다.
일본 오사카에서 보내는 우리의 세번째 날이였다.
 

   

                (동대사 가는길)                                     (동대사)                                      (동대사 안의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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